먼저 결론부터
오전에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전날 저녁은 7~8시까지 가볍게 먹고, 밤 9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검진기관에 가는 것이 국내에서 가장 흔한 안내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검진 전날 저녁 9시 이후 금식을 기본 수칙으로 소개하고, 국립재활원 장애인건강검진센터도 오전 검진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도착할 때까지 금식하도록 안내합니다.
숫자로 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진료지침은 공복혈당을 ‘8시간 공복’ 상태에서 잰 값으로 정의합니다. 아침 8시에 피를 뽑는다면 전날 자정이 이론상 마지노선이고, 밤 9시에 끊으면 11시간이 되어 여유가 생깁니다. 삼성서울병원처럼 내원 시각 기준 10시간 이상을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식사 시간이 왜 중요할까요. 밥을 먹고 나면 몇 시간 동안 혈액 속 당과 지방이 크게 바뀝니다. 아침을 먹고 잰 공복혈당은 평소 몸 상태가 아니라 그 아침밥을 잰 셈입니다. 반대로 적혈구 수 같은 혈구 검사는 식사로 거의 움직이지 않아 하루 중 언제 해도 됩니다.
그리고 어떤 표보다 앞서는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예약한 검진기관이 보낸 안내를 따르는 것입니다. 금식하라고 했는데 먹었다면 피를 뽑기 전에 접수처에 말해 주십시오. 식후에 뽑은 피를 공복 상태로 읽으면 결과가 조금 틀리는 정도가 아니라 판정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금식이란 정확히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인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음식과 음료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국내 검진기관 안내문은 여기에 껌, 사탕, 담배까지 포함합니다. 서울성모병원은 자정 이후 물과 껌, 사탕, 담배를 모두 금하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도 검진 당일 아침에는 식사와 물, 담배, 껌, 사탕을 일체 삼가도록 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오해가 많습니다. 피검사를 받으러 온 외래 환자 150명에게 물어본 연구에서 금식을 정확히 설명한 사람은 39%뿐이었고, 46%는 마지막 식사 시각과 상관없이 전날 밥만 먹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헷갈리는 것이 수검자 탓만은 아닙니다. 진단검사 분야 전문가들도 금식의 정의가 기관과 문헌마다 제각각이라고 지적했고, 유럽 작업반이 통일안을 내놓았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도 자정까지 물을 허용하는 곳과 밤 9~10시부터 물까지 끊게 하는 곳이 함께 있습니다.
현실적인 순서는 이렇습니다. 전날 저녁을 일찍 마치고, 안내받은 시각까지는 물을 마시고, 피를 뽑을 때까지 그 밖의 것은 입에 대지 않는 것입니다.
검사별로 보는 금식의 필요성
아래 표는 길잡이입니다. 내가 받는 검진 안내문과 맞춰 보며 쓰십시오. 보건복지부의 건강검진 실시기준에 따라 국가 일반건강검진에도 혈액검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검진 전체가 ‘아침 굶기’가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날 위내시경이나 복부초음파를 함께 받는 경우가 많고, 이 검사들은 혈액검사보다 더 엄격한 금식을 요구합니다. 신장 기능과 전해질 검사처럼 식사의 영향이 작은 항목도 같은 시각에 함께 뽑습니다.
| 검사 | 금식 | 먹고 가면 어떻게 되나 |
|---|---|---|
| 공복혈당 | 8시간 이상 | 식사 직후부터 올라가 공복 수치로 읽을 수 없습니다. 판정 기준인 100 mg/dL과 126 mg/dL을 쉽게 넘깁니다. |
| 중성지방·LDL 콜레스테롤 | 국내 지침은 12시간 | 중성지방이 식후에 오릅니다. LDL을 계산식으로 구할 때 중성지방 값을 쓰기 때문에 함께 흔들립니다. |
| 당화혈색소(HbA1c) | 필요 없음 | 지난 몇 달의 평균 혈당을 보여 주므로 한 끼 식사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
| 혈구 검사(적혈구·백혈구·혈소판) | 필요 없음 | 가벼운 식사로 일부 수치가 조금 움직이는 정도라 금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 간 기능(AST·ALT·γ-GTP) | 보통 필요 없음 | 평소 식사로는 거의 안정적입니다. 전날 술이 더 문제가 됩니다. |
| 신장 기능(크레아티닌·eGFR) | 필요 없음 | 평범한 식사 뒤에는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
| 철·페리틴 | 아침 공복 권장 | 혈청 철은 하루 중에 변하고 식후에 오릅니다. 철분제를 먹는다면 미리 물어보십시오. |
| 위내시경·복부초음파 | 전날 밤부터, 물 포함 | 혈액검사는 아니지만 검진의 금식 시각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이 남아 있으면 관찰이 어렵습니다. |
공복혈당은 몇 시간 굶어야 하나
8시간입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정상 공복혈당을 8시간 공복 상태에서 100 mg/dL 미만으로 정하고, 100~125 mg/dL을 공복혈당장애, 126 mg/dL 이상을 당뇨병 진단 기준의 하나로 둡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검진기관이 8시간을 최소로 잡고 실제로는 10시간 안팎을 안내합니다.
시간에 이렇게 엄격한 이유는 경계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진짜 공복이 아니었던 피는 100이나 126이라는 선을 쉽게 넘습니다. 같은 학회 지침에 실린 통계로는 30세 이상 성인의 44.3%가 이미 당뇨병 전단계에 있으니, 경계 근처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당화혈색소는 원리가 달라서 식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검진 항목에 둘 다 있다면 아침 규칙을 정하는 것은 공복혈당 쪽입니다.
콜레스테롤 검사에도 금식이 필요한가
국내에서는 지금도 공복 채취가 원칙입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의 2018년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은 중성지방과 LDL 콜레스테롤을 재기 위해 12시간 이상 금식하도록 하고, 21세 이상 성인은 4~6년마다 공복 지질 검사를 받도록 권합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도 8시간 이상 공복 상태에서 지질을 잽니다.
유럽은 방향을 바꿨습니다. 유럽동맥경화학회와 유럽임상화학회는 2016년 공동 합의문에서 지질 검사는 금식 없이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평범한 식사 뒤 중성지방은 평균 최대 26 mg/dL 정도 오르고, 총콜레스테롤과 LDL 콜레스테롤은 8 mg/dL 정도 내려가며, HDL 콜레스테롤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식후 수치로도 심혈관 질환 위험을 비슷하게 예측합니다.
그래도 이 차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성인의 27.4%가 고콜레스테롤혈증에 해당할 만큼 흔한 질환이라, 같은 조건에서 잰 값을 해마다 비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후에 잰 지질 검사를 읽을 때는 이 차이를 염두에 두십시오.
검진기관이 금식을 요구한다면 그 안내를 따르십시오. 그것이 그 기관의 절차이고, 지난번 중성지방이 매우 높았던 것처럼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은 대체로 괜찮고, 커피는 안 되는 이유
맹물 자체는 혈액검사 수치를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국내 검진은 내시경이나 초음파를 함께 받는 경우가 많아 물을 마시는 시각까지 정해 두는 곳이 많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밤 12시까지 물을 허용하고 그 뒤로는 절대 금식하게 합니다.
커피는 설탕도 우유도 넣지 않은 블랙이라도 참는 것이 원칙입니다.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식사 1시간 전에 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을 때보다 식후 혈당 반응이 147~216% 컸습니다. 다른 시험에서도 당 음료 30분 전에 마신 커피는 물에 비해 인슐린을 올렸습니다.
반대 결과도 있습니다. 2023년 연구에서 자원자 27명이 피를 뽑기 1시간 전 커피 한 잔을 마셨지만 일상적인 생화학 검사와 혈구 검사에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습니다. 실수로 마신 사람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공복혈당을 지키기 위한 규칙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술은 금식 시간과 별개로 더 길게 끊으라고 안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은 검진 2~3일 전부터 음주와 과로를 피하도록 합니다.
검진 전날 저녁은 이렇게
저녁은 평소처럼 먹되 가볍게 먹으면 됩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은 전날 저녁 8시 이전에 가볍게 먹고 밀가루 음식, 술, 고기 위주의 과식을 삼가도록 안내합니다. 피해야 할 것은 평소보다 무겁고, 늦고, 술이 많은 저녁입니다.
나머지는 예약 시각에서 거꾸로 계산하면 됩니다. 아침 8시 접수라면 밤 9시에 끊어도 11시간이 확보됩니다. 이른 시간대로 예약하면 금식 시간의 대부분을 잠자는 동안 보낼 수 있습니다.
- 마감 시각부터 정하기예약 시각에서 거꾸로 계산해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시각을 저녁 전에 확인해 둡니다.
- 물은 안내받은 시각까지자정까지 허용하는 곳이 많지만, 밤 9~10시부터 막는 기관도 있습니다.
- 군것질은 모두 멈추기껌, 사탕, 커피, 주스, 담배는 피를 뽑고 난 뒤로 미룹니다.
- 끝난 뒤 먹을 것 챙기기어지러움을 잘 느낀다면 검사 뒤에 먹을 간식을 챙기면 기다리는 시간이 편해집니다.
약은 마음대로 끊지 않는다
혈압약은 대부분 그대로 먹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은 혈압약과 항경련제를 검진 당일 오전 5시쯤 종이컵 반 컵 정도의 물로 먹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도 항혈전제를 제외한 심혈관계 약은 당일 6시 이전에 소량의 물과 함께 먹도록 안내합니다. 평소 먹는 약을 어떻게 할지는 따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외는 당뇨병입니다. 인슐린과 일부 먹는 당뇨약은 혈당을 낮추기 때문에 굶은 상태에서 평소처럼 쓰면 저혈당 위험이 있습니다. 국내 검진기관은 대부분 검진 당일 아침에는 당뇨약과 인슐린을 쓰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처방한 의사에게 미리 확인해 두십시오.
아스피린 같은 항혈전제는 혈액검사보다는 내시경 중 조직검사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끊을지, 언제 끊을지는 처방한 의사와 상의하라는 것이 공통된 안내입니다. 철 검사가 포함된다면 철분제를 언제까지 쉴지도 미리 물어보고, 먹고 있는 영양제는 문진표에 꼭 적으십시오.
오후 검진이거나, 이미 먹어 버렸다면
오후 검진은 금식 시각이 늦춰집니다. 국립재활원은 오후 검진이라면 전날 저녁을 7~8시 이전에 가볍게 먹고 밤 12시 이후 금식하되, 금식이 힘들면 오전 6시까지 소량의 생수는 마실 수 있게 하고 그 뒤로는 절대 금식하도록 안내합니다.
정해진 시각 뒤에 먹었다면 피를 뽑기 전에 접수처에 알려 주십시오. 검진이 통째로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혈구 검사나 신장 기능, 소변검사, 흉부 X선처럼 식사와 상관없는 검사는 그대로 할 수 있고, 공복혈당이나 위내시경처럼 금식이 필요한 검사만 날을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말하지 않고 받는 것만은 피하십시오. 공복 수치로 읽힌 식후 혈당은 없는 병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있는 병을 가릴 수 있습니다.